미국에 처음 와서 첫 1년은 한국인들과 지냈었다. 일 년간의 유학이 지쳐갈 때쯤 변화가 필요했고, 그때 만난 호스트 분들과 대학을 졸업하고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이 재택근무여서 플로리다로 이사를 오신 호스트 분들과 같이 살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온 지 2년 차에 만난 호스트 분들이 어떨 분들 일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나기 전까지는 셀렘반 걱정 반이었다. 나의 호스트, 미국 가족은 처음 만났을 때는 60대의 평범한 부부였고, 지금은 시간이 꽤 흘러 두 분 다 70대 초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고 미국에 들어왔을 때 학교 주차장에서 호스트 엄마를 처음 만났다. 나는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호스트분이 되실 분을 뵈었다. 호스트 엄마는 키가 나랑 거의 비슷했다. 내가 진짜 작은 키이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신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뭐 여하튼...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 수영장이 있는 학교 근처의 한 2층 집이었다. 호스트 아빠는 몇 주 뒤에 처음 만났다. 두 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진짜 앞뒤 하나 안 맞는 영어를 써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면 검색을 해가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생겼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차를 타고 가다가 호스트 아빠가 "한국에서는 엄마를 뭐라고 부르냐(call)?"라고 질문을 했었는데 나는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어떻게 전화(call)를 하냐?"라고 이해를 해서 Skype라고 대답했었다. 내가 대답을 하고 나니, 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나에게 설명을 해 주셨다. 원하던 대답은 mom의 한국어인 "엄마"였다. 가끔씩 호스트 아빠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에 대해 말할 때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미국 가족과 살며 내 영어 실력은 엄청 빠른 속도로 늘었다. 학교, 집 24시간을 영어만 듣고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호스트 아빠에게 배운 것 중 하나는 영어로 sarcasm (풍자)를 하는 방법인데 지금까지도 굉장히 유용하게 쓰고 있다. 스피킹 리스닝이 늘어가는 건 어쩌면 영어로만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어가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라이팅과 리딩은 또 다른 문제였다. 영어로 읽고 쓰려면 어휘력이 중요한데 현저히 어휘력이 딸렸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뭔 소리인지 모를 때가 다반사였다. 책을 워낙 안 읽다 보니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글 쓰는 실력이 부족했다. 나는 나의 가족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호스트 엄마분께서 내 영어 공부를 많이 도와주셨다. 학교에서 읽어야 하는 책이 있으면 둘이 같이 책을 들고 내가 소리 내어 읽고 문단별로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해 가며 공부를 했다. 내가 혹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또한, 내가 쓴 에세이들을 첨삭해주셨다. 영어로 글 쓰는 것 중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관사 (the, a, an)의 사용법이었다. 도대체 언제 이 관사들을 써야 하는지 몰랐고 열에 아홉 관사를 빼먹었다. 호스트 엄마가 내 에세이를 읽고 항상 관사들을 제자리에 넣어주었다. 내가 쓴 문장 중에 좀 뜻이 애매한 것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들어보고 좀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수 있도록 첨삭해 주셨다. 12학년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는 학교에서 조교를 할 수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7,8,9 학년 영어 수업 조교를 맡게 되었다. 내가 조교를 하면서 깨달았던 건, 미국 애들도 그다지 글쓰기를 잘한다는 건 아니었다. ㅎㅎ 문법만큼은 주입식 교육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ㅎㅎ 졸업을 하기 전 영어 선생님이 지난 4년간 고등학교에서 썼던 모든 에세이를 나눠주셨다. 9학년 때 썼던 에세이를 읽어봤는데 내가 뭐라고 썼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영어실력이 처참했다. 이 에세이를 읽고 좋은 점수를 주신 영어 선생님께 정말 감사했다.
호스트 분들과 살면서 영어가 많이 늘다 보니 가끔 들었던 말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언제 미국에 왔는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말이 여기서 오래 살거나 태어난 줄 알았다는 얘기였다. 그때마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때는 미국 유학 초기여서 영어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뭐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고 미국에 산지 10년 차이다 보니 뭔가 영어를 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호스트 분들이 나의 미국 가족이 됨과 동시에 그분들의 가족들도 나의 미국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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